‘공상 허언증’ 왜 거짓을 말하는 걸까
‘공상 허언증’ 왜 거짓을 말하는 걸까
  • 장은영 한양대 구리병원 교수
  • 승인 2014.07.18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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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모임이나 회의에서 발표를 한 사람에게 당신이 잘 마무리됐는지 물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이 “음, 잘 끝났어. 다들 하나같이 감탄하던데”라고 대답했다고 상상해보자. 또는 “내가 발표를 마치자마자 사람들은 발표가 끝난 것을 아쉬워하는 눈치였어. 뒷자리에 앉았던 한 노신사는 사회자가 질문을 하라는 말도 없었는데 손을 번쩍 들었지. 한 5초 정도 침묵이 흐르다가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모두 따라서 박수를 쳤어”라고 말했다 상상해 보자.

두 가지 경우 모두 겸손한 반응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선호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호불호는 차치하고 두 대답 가운데 당신은 무엇을 더 믿을만하다고 여길까.

 

두 번째 대답은 너무나 극적이고 일어나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믿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다른 반론도 가능하다. 진실이 아니고서야 그렇게까지 생생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점이다. 대체로 우리는 생생하고 세부적인 내용들까지 자세하게 말해주는 이야기를 불신하기 어렵다. 위의 두 번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부러울 수도 있고 겸손하지 않은 상대방에게 놀랄 수도 있지만 의심하기는 어렵다. 실제 경험하지 않고서는 말하기 힘든 생생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야기 내용의 생생함이나 세부적인 묘사는 우리가 거짓을 추려낼 때 자주 활용하는 단서들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는지 꼭 확인하고 싶다면 우리는 세세한 내용을 추가로 질문하게 된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세부 내용을 꾸며서 말하기 어렵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부적으로 치밀하며 생생한 이야기는 항상 진실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보통 사람들은 거짓을 말하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채워서 말하기 어려워하거나 차마 그렇게까지 거짓을 둘러대지 못하지만 이를 해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공상 허언증’이라는 표현이 최근 매체를 통해서 간간히 소개되곤 한다.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꽤 그럴싸하게 꾸며서 말하는 병리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물론 누구나 거짓을 말할 수 있다. 다만 공상 허언증이 의심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매우 자주, 극적으로 한다. 이런 이유로 공상 허언증을 ‘공상적 거짓말’이나 ‘병적 거짓말’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의 거짓말은 자발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즉 누군가의 질문에 둘러 대다보니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과장해서 늘어놓는다.

이들은 왜 거짓을 말하는 걸까? 한 가지 가능성은 상대방을 속여서 무언가 이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권력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으로 속여 상대방의 금전을 편취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상 허언증을 지닌 사람들은 물리적이거나 현실적인 이득이 명확하지 않은데도 거짓말 늘어놓기를 좋아한다. 가장 대표적 인물이 소설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뮌히하우젠(Münchhausen) 남작이다. 이 남작은 자신이 겪은 사냥과 전쟁이야기를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거짓인지 구분하기도 어렵게 공상과 상상을 섞어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이야기한다. (‘뮌히하우젠 증후군’도 이 주인공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단 뮌히하우젠 증후군이나 공상 허언증은 증상의 명칭이며 질병이나 장애의 명칭은 아니다.)

물론 병적인 거짓말을 반복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단지 자신의 정체성이나 근원적인 자아와 직결되는 중요한 가치들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를 뿐이다. 신뢰와 진실로 친밀한 사람과 교류하는 것보다는 타인들로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 것이나 완벽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허상을 공고히 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더 중요하다.

양심의 가책, 다른 사람의 의심, 친밀하고 진솔한 인간관계,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보다 그럴싸한 거짓말을 늘어놓아 자신이 추구하는 자기상을 확고히 하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다. 이 때문에 이야기의 틈새를 스스로 메우고 의미를 부여해 스스로도 진실이라 믿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을 말할 때 나타나는 반응들, 예를 들어 목소리가 떨리고 땀이 나거나 피부반응이 달라지는 등의 반응이 관찰되지 않는다.

나름의 합리화도 작동한다. 본인은 비록 평범하게 태어났지만 고귀한 집안의 자녀들보다 더 낫고 귀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는 식이다. 그러니 생생하게 늘어놓은 거짓에 당신이 속았다거나 어떻게 그런 소설 같은 거짓을 믿었는지 자책하지 말라. 스스로도 진실이라 믿는 바를 당신이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

※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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