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선견지명이 있다고 착각할까?
우리는 왜 선견지명이 있다고 착각할까?
  • 장은영 한양대 구리병원 교수 (jangmean@hanmail.net)
  • 승인 2014.06.20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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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말을 듣는다. 어린 시절 물건을 떨어뜨린 후 ‘내 너 그럴 줄 알았어’ ‘어찌 불안불안하더라니’라는 어머니의 따가운 눈총을 한번쯤을 받아봤을 것이다. 대중적으로 큰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이를 신뢰하다가도 그 사람의 치부가 드러나고 나면 ‘내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싶었지’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지인 가운데 한 사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개그맨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 개그맨이 한 프로그램에서 ‘내 너 그럴 줄 알았다’라고 자신을 지적하는 동료에게 ‘그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말해주지 그랬느냐’고 따졌다는 것이다. 듣고 나서 한참 웃었을 정도로 재미있는 반박이다.

▲ 장은영 한양대 구리병원 교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런 표현을 의외로 자주 하고 자주 듣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라도 지닌 것일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예상했다고 착각하거나 믿고 주장하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허풍쟁이일까?

이러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실제 자신의 잘못된 예측은 무시하고 잘 들어맞은 생각들만 강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음을 인식하면서도 그와 반대로 거짓을 주장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벌어진 사건에 대해 이미 예견했다고 착각하는 경향은 사람들에게 대체로 내재돼 있다. 특히 동양문화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 여러 연구결과도 있다. 문화 간 차이와 특징을 연구해 온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후견지명효과(hindsight effect)’라고 부른다. 선견지명에 빗대 후견지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선경지명이라 착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야 생각해냈다는 의미다.

우리는 왜 이를 선견지명이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후견지명을 연구한 심리학자들은 이를 인간이기에 갖는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즉 이미 발생한 일을 사전에 예상했다고 믿고자 하는 마음은 세상을 관통하는 어떤 원리가 존재한다거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특히 동양에서는 세상사 모두 이유가 있고 전체를 아우르는 섭리가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유와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전생의 업보나 조상의 은덕까지도 떠올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벌어진 일을 ‘그럴 줄 알았다’고 해석하는 습관은 단순한 허풍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안과 사안을 연결해 전체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문화특수적인 경향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 이는 발생한 일을 수용하고 그 의미를 전체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특징의 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후견지명효과를 생각하다보면 일찍이 이 표현을 묘비에 사용한 조지 버나드쇼가 떠오르곤 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의 묘비에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글귀는 하지 못한 일이나 결단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로 해석되기도 하며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으로 연결되기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멋진 표현에는 후회나 다짐 이상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한낱 인간의 한계를 수용하는 조지 버나드쇼의 깨달음이 묘비명에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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