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우리가 다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 장은영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승인 2014.04.28 13: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월호 침몰사고와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 상황들로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사망했거나 실종된 사람들, 침몰에서 다행히 생존한 사람들,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사고 이후로 수습에 몰두해 온 사람들······.

이 사태를 계속 지켜본 우리 모두 근래 보기 드문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 개인적 경험에 국한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필자를 비롯한 여러 지인들은 힘들어한다. 무기력하고 불안하고 황당하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

왜 그럴까. 그 원인 중 하나는 안전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심리학이론에 의하면 인간이 기본적인 생존에 필요한 것들, 즉 숨 쉴 공기, 영양분을 얻을 음식, 마실 물 등이 구비되면 다음으로 원하는 것이 안전이다. 그만큼 기본적인 생존이 가능해진 후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안전하다는 믿음인 것이다.

 

이 이론을 제안했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이 추구하는 안전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봤다. 하나는 신체적 안전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 안전이다. 그는 안전하고 싶은 마음이 반복해 흔들리면 ‘신경증’, 흔한 말로 노이로제를 겪게 된다고 한다.

불행히도 우리가 신체적·심리적으로 안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모두 심하게 손상되고 말았다. 우리들 가운데 상당수가 다양한 방식으로 신경증을 겪는지도 모르겠다. 사고희생자들이나 가족들을 바라보는 마음만으로도 너무 아픈데 안전하고 싶다는 바람이 뿌리부터 흔들리면서 슬프고 불안하며 공포스럽고 무기력하다.

보통사람들은 신체적 안전은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어느 정도 신체적 안전에 대한 위험을 감내하면서 각자 할 일을 하고 갈 곳을 간다. 하지만 직접적인 피해자도 아닌 목격자일 뿐인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사고를 둘러싼 전후 사건들과 상황들에서 심리적으로도 안전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인간이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조건은 상황을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다. 반대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예상할 수 없고 그 상황들을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면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한낱 인간이 어떻게 앞날을 모두 예측하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우리도 이를 잘 안다. 따라서 최대한 예측가능하거나 통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나름 성과도 얻어왔다. 이번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재난관련 매뉴얼이나 안전점검규칙들, 여러 행정체계나 공조체계들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는 믿었다. 우리가 준비해 온대로 대응하면 안전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 중 어느 하나도 우리의 믿음을 지켜준 것이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뉴스를 읽고 보는 것이 겁날 지경이다. 며칠이 지나도 기다리던 생존자 소식은 없고 선박이나 재난구조와 관련된 문제점과 잘못들만 매체를 가득 메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통제력도 예측력도 잃어버린 우리가 어떻게 다시 안전하다는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 통제하기 위해, 예측하기 위해 인간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규칙을 알아내고 인과관계를 깨닫는 작업이다. 문제를 파악하고 규칙을 깨달으면 이후에는 대비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비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미래에 대해 낙관론이 다시 생겨난다. 그러니 이번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침몰사고가 왜 이런 참사로까지 이어졌는지 알아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분노할 것이고 희생자들에게 죄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덜 고통 받은 목격자인 우리가 그 과정을 견디며 전체 상황을 깨닫는 것이 시작이다. 우리가 이번 일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났는지 온전히 알게 되는 순간이 우리가 다시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시점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