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정신질환, 신체질환처럼 상시 대응체계 마련돼야
[특별기고] 정신질환, 신체질환처럼 상시 대응체계 마련돼야
  •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4.01.0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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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질병 앞에 사람들은 대체로 무기력하다. 물론 노력을 통해 체력을 키울 수 있고 예방할 수 있는 질병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하기 어려운 질병들이 있고 사람들은 이런 질병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기게 만들기도 하고 나아가 질병 자체를 적극 부정하고 터부시하며 주류사회로부터 격리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과거의 사례가 있다. 바로 암과 에이즈다. 50년 전만 해도 암에 걸리는 것 자체가 사형선고였다. 마땅한 치료법도 없고 치료비도 워낙 비싸 병에 걸리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사회적 실패로 받아들여지던 시대가 있었다.

에이즈는 어떠한가?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에이즈는 ‘치료제가 개발되기 이전의 감염병’이라는 팩트보다는 부도덕한 생활에 대한 벌처럼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두려움에 근거한 편견과 부정은 병들지 않은 상대적 다수를 보호하고자 하는 폭력적 배제를 낳았고 이는 더 많은 환자와 공공의 피해를 만들었다.

질병 치료가 만들어내는 선순환

그런데 결국 이러한 편견과 배제를 극복하게 만든 것은 암과 에이즈 치료제의 개발과 의학기술의 발달, 이를 적절히 제공하는 치료시스템과 정책의 발전이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꾼 것은 ‘편견을 갖지 말고 차별하지 말자’라는 슬로건이 아니었다. 실제 완치가 가능한 암과 에이즈의 치료법이 개발되고 적절한 의료시스템을 통해 적기에 진단·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마련됨으로써 대중의 인식은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국가암관리법’이 만들어지고 법에 의해 연구개발비 투자와 국립암센터가 설치됐으며 지역 보건소 등에서 암검진과 암환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 이뤄졌다. 조기진단·치료가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민간보험이 생기고 이를 통해 암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높아졌다. 또 암치료기술의 연구개발에 대한 공공·민간투자가 증가해 결과적으로 암질환으로 인한 비용이 줄고 국민건강수준이 향상되는 선순환이 가능해졌다.

이는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로 국가투자가 이뤄지는 심뇌혈관질환도 마찬가지이다. 국가투자에 의하며 질병을 예방·치료하는 기술이 개발됨으로써 질병을 적극 알리고 도움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공공과 민간 의학영역은 이에 반응해 치료기술이 발달하는 선순환구조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 유수의 상급종합병원마다 암·심뇌혈관센터가, 지역별로는 권역응급의료기관과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설치돼 있다. 이러한 센터에 많은 인력과 기술투자가 이뤄지며 최선의 진료가 제공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질병 치료에 대한 사회적인식과 투자가 높기 때문이다.

‘~신체질환처럼’이 정신건강의 혁신이다

반면 정신질환 영역은 어떠한가? 선진국의 정신건강 연구개발예산은 미국 4조3000억원, 영국 2500억원, 호주 880억원으로 전체 보건 연구개발예산의 10% 내외인 데 반해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연구개발예산은 0.79%이다. 암극복연구개발 430억원, 만성병관리기술개발 210억원에 반해 정신건강연구개발은 62억(범부처사업부분제외)원으로 매우 취약하다.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정신과 병실은 감소하고 있으며 정신응급 환자는 권역응급, 지역응급의료지정기관을 찾아도 대부분 응급치료서비스가 불가능하다. 보편적인 질병치료연구개발과 치료서비스에서 여전히 소외돼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 국민정신건강수준 향상에 대한 적극적인 국가 개입을 천명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며 분명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이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대통령의 의지를 뒷받침하는 치료수준향상을 위한 법제도와 연구개발, 인식개선의 선순환구조가 뒤따라야 한다.

정신건강혁신은 정신건강영역만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신체질환의 극복을 위해 보편적·상식적 체계를 구축하듯 하나의 체계 안에서 차별과 편견 없이 정신질환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혁신이다.

법에 의해 국립과 권역암센터, 심뇌혈관센터, 권역외상, 응급센터가 설치되듯이 조현병, 우울증, 중독성질환 등의 치료기술과 임상연구를 수행하고 이를 의료기관과 지역정신보건기관에 교육·확산하는 센터가 설치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체질환처럼’이 정신건강혁신의 비전이 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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