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19년 만에 대규모 총파업…의료공백 따른 혼란 가중
보건의료노조, 19년 만에 대규모 총파업…의료공백 따른 혼란 가중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07.1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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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환자안전, 국민생명 지키기 위한 파업”
진료공백으로 경증환자 퇴원, 수술 취소 잇달아
전문가들, 정부 강경대응에 업무명령개시도 예상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13일 동화면세점 앞에서 ‘파업 1일차 산별총파업 대회’를 개최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13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파업 1일차 산별총파업 대회’를 개최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이 오늘(13일) 본격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번 파업은 19년 만에 벌이는 대규모 파업이다.

보건의료노조 산하 122개 지부 140개 사업장은 오늘 오전 7시를 기해 파업에 들어갔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사를 중심으로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약사, 치료사, 요양보호사 등 의료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산별노조다. 의사는 일부만 가입해 있지만 의료계 다양한 직역들이 속해 있다.

파업 사업장은 사립대병원지부 28개, 국립대병원지부 12개, 특수목적공공병원지부 12개, 대한적십자사지부 26개, 지방의료원지부 26개 등이다.

세부적으로 사립대병원은 ▲고대의료원 ▲경희의료원 ▲아주대의료원 ▲이화의료원 ▲한림대의료원 ▲한양대의료원 등 20개 사립대병원지부와 ▲부산대병원 ▲전남대병원 ▲전북대병원 ▲충남대병원 등 7개 국립대병원지부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암센터 ▲보훈병원 ▲원자력의학원 등 12개 특수목적공공병원지부 등이 참여한다.

■보건의료노조, 9.2노정합의 이행되지 않아

“최소한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이라도 보장됐으면 좋겠다.”

파업 1일차인 오늘 보건의료노조는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파업 1일차 산별총파업 대회’를 개최, 거센 빗속에서도 연신 구호를 외쳤다.

이번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투쟁에는 근로조건 개악(改惡)이 없는 주 40시간 제외 의료기관 중 2만여명의 노조가 참여했다. 이는 2004년 총파업 이후 19년 만에 진행되는 보건의료노조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파업을 통해 ▲비싼 간병비 해결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환자안전을 위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제도화 적정인력 기준 마련 ▲무면허 불법의료 근절을 위한 의사인력 확충 ▲필수의료서비스를 책임지는 공공의료 확충 ▲코로나19 전담병원 정상화를 위한 회복기 지원 ▲코로나 영웅에게 정당한 보상과 9.2노정합의 이행 ▲노동개악 중단과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기 등 7가지를 요구했다.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은 “진료차질이 빚어지고 의료공백문제로 파업 철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의사가 없어서 대리수술 같은 불법의료가 판을 치고 있는 행위야말로 진짜 환자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질타했다. 이어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를 향해서는 “정부의 전향적이고 실질적인 해법이 없으면 무기한 파업을 이어갈 예정”이라며 “정치파업으로 매도하지 말고 노조와 교섭과 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거센 폭우 속에 보건의료노조는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기치를 들며 총파업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거센 폭우 속에서도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기치를 들며 총파업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진료공백 없을 것…장기간 이어질 시 국민 ‘건강’ 위협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공백에 관한 질문에 “총파업으로 일부 진료 차질과 환자 불편은 예상되지만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필수인력을 배치하고 응급대기반을 가동 중”이라며 “일부에서 우려하는 의료대란과 심각한 의료공백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총파업을 앞두고 이미 여러 병원에서는 입원환자들을 내보내고 수술과 외래진료 일정 등을 취소하고 있다.

예컨대 국립암센터는 직원 2200여명 중 1100여명이 노조에 포함돼 있다. 이에 13~14일에 예정된 수술 약 120건을 취소했으며 500병상 중 180병상만 남기고 320명의 입원화자도 퇴원조치를 내렸다. 또 외래진료 2000여건 역시 일정이 미뤄졌다. 다행히 국립암센터는 12일 늦은 밤 병원 측과 노조 측이 극적 합의에 성공, 정상운영이 결정되며 현재 정상진료가 가능하다.

또 소위 빅5병원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들의 문제는 심각하다.

부산대병원에서는 급성 심근경색환자가 응급수술 직후 회복도 되기 전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혼란이 커지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은 입원환자를 퇴원시키거나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있다. 이 병원은 총 1136개 병상을 두고 있지만 13일부터는 일반 병동 2개와 중환자 병동 등 약 200개 병상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비워야 한다.

광주·전남지역은 총파업에 15개 지부 사업장 6000여명 조합원이 참여한 만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전남대병원은 이날 오전 근무자 중 간호사 40명, 지원직 70명 등 110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또 광주기독병원은 200여명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했다.

병원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의료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예약 환자 중심의 진료가 진행되고 있어 일반 진료의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전북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도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북대병원은 비상진료체계에 들어갔다. 간호사 근무방식을 3교대에서 2교대로 조정, 행정 파트의 보건 인력을 복귀시켰다.

보건의료노조 전북본부에 따르면 총파업에 동참하는 도내 의료기관은 전북대병원, 원광대병원 등 대형병원 2곳과 예수병원, 정읍아산병원, 군산의료원, 남원의료원, 진안의료원, 전북혈액원 등 8곳이다.

전주에 거주 중인 배 모 씨는 “어머니가 유방암 초기를 진단받고 수술을 두 달 기다렸는데 미뤄져 화가 난다”며 “ 하루빨리 파업이 끝나 제때 진료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답답함을 표출했다. 

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은 “몇 주 기다려 수술 날이 다가왔는데 수술이 어렵다고 말 하니 암환자와 가족들 모두가 분노와 좌절을 표하고 있다”며 “암환자는 치료 스케줄에 맞춰 약을 쓰기 때문에 타 의료기관에 보내도 치료할 수가 없어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복지부 박민수 2차관은 12일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에 대비해 상급종합병원장들과 긴급상황점검회의를 개최했다.
복지부 박민수 2차관은 12일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에 대비해 상급종합병원장들과 긴급상황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정부, 국민 건강권 침범할 시 ‘강경 대응’ 예고

여당과 정부는 보건의료노조 파업에 단호한 대응을 예고했다. 국민의힘과 복지부는 13일 오전 보건의료관련 현안점검회의‘를 비공개로 진행, 파업과 관련해 논의를 진행했다.

이미 복지부는 6월 28일 박민수 제2차관을 반장으로 의료기관 파업 상황 점검반을 꾸리고 보건의료 재난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했다. 지난 6일 파업에 대비해 비상진료대책을 마련했고 11일부터는 시도별 비상진료대책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

복지부는 보건의료노조의 합법적 권리 행사를 인정하지만 국민 건강에 막대한 유해를 끼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업무개시명령’을 예상하고 있다.

업무개시명령은 의료법 제59조에 근거한다. 이 법은 보건의료정책을 위해 필요하거나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 또는 발생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내리는 지도·명령이다. 불응 시에는 면허정지 처분이나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처해진다.

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술실 등 필수의료 서비스가 차질없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병원협회, 의료기관 등과 협력체계를 마련했다”며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통해 긴습 후송 등 국민의 건강권이 침범받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2021년 9월에도 전면 파업을 예고한 바 있다. 당시 복지부와 노조는 밤샘 협의를 통해 ‘9·2 노정합의’를 맺었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는 정부가 ‘9·2 노정합의’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4월 발표한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 등 관련 사안을 추진 중이라고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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