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간병제도…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특별기고]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간병제도…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 노동훈 대한요양병원협회 홍보위원장(편한자리의원 원장)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3.06.0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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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훈 대한요양병원협회 홍보위원장(편한자리의원 원장)

대학병원 인턴 때의 일이다. 새벽에 호출을 받고 졸린 눈을 비비며 셔츠를 입었다. 레지던트 시절과 달리 수술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눈치 보였기 때문이다. 오후에 함께 일하던 인턴이 필자의 옷이 이상하다고 했다. 셔츠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던 것. 정신없이 일하느라 불편한지도 몰랐다. 상대가 알려줘서 알았고 다시 옷을 입었다. 대한민국 간병제도 역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장기요양보험이 실시된 계기는 2008년경 외국 공항에 부모를 버리고 온 사건이었다. 정부는 장기요양 시범사업을 본 사업으로 전환하고 요양보호사제도를 만들어 돌봄기능을 만들었다. 같은 시기 요양병원은 미국 요양원 제도를 바탕으로 일당정액제 수가를 도입했다. 요양병원도 간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간병문제가 생겼고 15년 이상을 그렇게 지냈다.

셔츠 단추는 다시 입으면 되지만 잘못된 요양병원 간병제도를 바로잡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요양병원은 의료기능 강화와 간병제도가 필요하다. 요양병원 간병제도를 위한 재원 마련도 논의돼야 한다. 정부는 요양원 집중치료실 같은 의료행위를 그만두고 입소 대상자를 돌봄과 요양이 필요한 분으로 한정해야 한다. 기능정립과 재원 마련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니 요양병원과 장기요양기관 간 충돌이 생긴다.

필자는 2014년 요양병원을 시작했고 2023년 폐업했다. 지난 9년간 요양병원 문제의 대부분은 간병이었다. 회진을 돌면서 병동 분위기가 싸한 것을 경험했다. 간호사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예상컨대 간병인의 폭언, 폭행 등으로 환자 분들이 긴장했음을 알 수 있었지만 달리 해결책은 없었다. 중국동포 간병인에 환자를 제대로 봐 달라고 요청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병원을 떠나는 간병인이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14년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건은 치매환자의 방화가 원인이었다. 월 20만원의 간병비를 받는 병원에서 간병인력을 배치할 수 없어 기저귀를 채우고 억제대로 묶은 후 다음 날 아침에 기저귀를 갈고 억제대를 풀었다. 이 때문에 짧은 화재시간에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2022년 남양주 간병인 폭행사건도 그렇다. 2023년 아버지의 항문에 배변 패드를 넣은 사건도 다를 바 없다.

대한요양병원협회는 기저귀 뉴스 보도 후 사실일까 싶었고 마포 경찰서에 사건을 고발했다. 간병문제를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심층 취재한 SBS ‘이상한 이야기 Y’가 최근 보도됐다.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담당 PD가 해당병원 간호사에게 사건을 묻자 입사한 지 일주일이라 모른다며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필자도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문제 있는 간병인에게 말해도 개선되지 않는 자괴감 때문일 것이다.

간병문제가 생기면 마녀사냥 식으로 요양병원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 중국 문화혁명 때처럼 ‘곡식을 먹는 저 새는 나쁜 새다. 인민을 위해 새를 박멸하자’는 식으로 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중국은 대기근이 발생해 수십에서 수백만 명이 사망했다. 요양병원의 간병은 ‘제도의 부재’가 문제이지 요양병원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요양병원이 나쁘고 사라져야 한다면 대한민국 고령자 의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코로나가 한창일 때 비뇨의학과 교수님들을 만났다. 대학병원에서 수술 등 치료를 마친 환자는 2주 후 퇴원해야 하는데 코호트 격리된 요양병원이 많아 환자 퇴원이 어렵고 퇴원이 안 되니 신환자 입원이 안 되고 수술과 검사, 처치까지 막혔다고 한다. 요양병원이 사라지면 문화대혁명 후유증처럼 대한민국 의료도 참사를 겪을 것이다. 마침 정부는 요양병원 간병제도를 연구 중이다. 대한민국 고령자 의료를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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