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아이는 성장한다…부모와 아이의 마음 여행 이야기
느려도 아이는 성장한다…부모와 아이의 마음 여행 이야기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05.3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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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신간] 일곱 살 파랑이는 왜 기저귀를 떼지 못했을까?
박정혜 지음/리커버리/276쪽/1만8000원
박정혜 지음/리커버리/276쪽/1만8000원

옛날 옛적에 한 산골짜기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았다. 토끼는 걸음이 매우 빨랐지만 거북이는 무척 느렸다. 당연히 발 빠른 토끼는 느린 거북이를 보고 ‘느림보’라고 놀렸고 화난 거북이는 달리기 시합을 제안한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토끼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나갔고 거북이는 뒤처졌다. 이때 토끼는 느린 거북이를 보고 한 가지 생각을 한다. ‘잠 좀 자도 내가 이기겠구나.’ 결국 토끼는 낮잠을 자기 시작했고 꾸준히 걷는 거북이에게 지게 된다.

이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아는 ‘토끼와 거북이’의 줄거리다. 기자는 어릴 적 이 전래동화를 들었을 때 ‘꾸준함의 중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30대가 돼보니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다만 느리게 배울 뿐이야. 느린 게 잘못된 것은 아니야. 그저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거야.”

이번에 소개할 ‘일곱 살 파랑이는 왜 기저귀를 떼지 못했을까?’의 한 구절이다. 모든 부모는 아이의 발달이 늦으면 상대적으로 늦을 뿐이라면서 자기 위안을 한다. 하지만 이는 냉정하게 말하면 ‘외면’일 뿐이다. 외면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 마련이다. 사실 아이는 가족에게 힘들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날개를 펴지 못한 파랑새와의 첫 만남

발달장애는 연령이 높아져도 신체기능을 일정하게 획득하지 못한 상태로 운동, 언어, 인지, 자립능력 등에 이상이 생긴 것을 뜻한다. 과거 발달장애 아동은 만3~4세까지 호전되기를 기대하다 치료를 받았지만 조기에 재활치료를 시작할수록 예후가 좋다. 실제로 2021년 만3세 전 치료를 시작해야 예후가 좋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문제는 발달장애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들의 예약을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천근아 교수는 2027년까지,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김붕년 교수는 2025년까지,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과 유희정 교수는 2024년까지 이미 예약이 다 차 있다고. 게다가 2025년 진료 스케줄이 확정되지 않아 이 시기 예약은 아예 받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굳이 상급종합병원을 택할 이유는 없지만 부모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약을 기다린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심리치료센터가 매우 많다. 주저하지 말고 심리치료센터를 방문하길 적극 권장한다.

책의 주인공 파랑이는 일곱 살이 됐지만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참고로 대소변은 생후 18개월에서 30개월 사이에 가리기 시작한다.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그간 아이와 부모 모두 오랫동안 곤욕을 치뤘다. 엉덩이에 변이 묻어나는 불쾌한 감각으로 아이는 심한 변비를 앓았고 부모는 변비에 좋은 한약을 구하기 위해 왕복 4시간이 걸리는 먼 곳까지 오갔다. 하지만 아이의 변비는 나아질 기미가 없어 관장을 하기도 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부모는 심리치료센터 방문을 결정했다. 이때 필자는 처음으로 파랑이를 만났다.

필자는 매주 한 번씩 가족치료 12회기와 부부치료를 권장했다. 굳이 부부치료를 프로그램에 넣은 것은 가족 구성원들의 면밀한 협동작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부모와 파랑이는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늦어도 아이는 성장한다. 부디 기저귀를 제때 떼지 못해 고민하는 부모들이 평안함을 찾길 바란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늦어도 아이는 성장한다. 부디 기저귀를 제때 떼지 못해 고민하는 부모들이 평안함을 찾길 바란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심상 시치료로 마음의 문 활짝

“저는 많이 힘들어요. 지쳐요. 이 말이 그냥 자꾸만 나와요.”

다름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치료가 거듭되면서 파랑이와 부모는 서로의 맘을 터놓기 시작했다. 작은 발걸음이었지만 한 발 내디뎠다는 사실이 필자를 기쁘게 했다.

필자는 파랑이와 부모에게 ‘심상 시치료(Simsang-Poetry-Therapy)’를 적용했다. 심상 시치료는 2011년부터 학계에서 공식 인증을 받았으며 통합 예술·문화 치유로 마음의 회복과 성장을 돕는 정신·심리치료다. 여기에는 개인치료, 부부치료, 가족치료 등이 포함돼 있으며 음악, 독서, 미술, 명상, 은유, 무용동작 등이 같이 진행된다.

이 책은 파랑이네 온 가족이 함께 떠난 마음속 여행 기록이다. 12회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가족들의 여정이 깊은 울림을 준다. 여행하면서 가족들은 깨닫는다. 기저귀는 드러난 문제일 뿐 사실은 가족 모두의 마음에 숨겨진 빛을 발견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였다는 것을.

신호를 보내오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는 느려도 성장한다. 다만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부담감을 주기 시작하면 아이의 성장은 아스라이 부서져 버린다. 기저귀는 언젠가 뗄 수 있다. 부디 포기하지 말고 아이의 말문을 열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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