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약물 A to Z] ‘펜타닐 오남용’, 결코 남의 나라 얘기 아니다
[배현 약사가 알려주는 중독성약물 A to Z] ‘펜타닐 오남용’, 결코 남의 나라 얘기 아니다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3.04.2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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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필자의 아버님은 10년 전 담낭암으로 작고하셨다. 처음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을 때만 해도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6개월을 더 가족 곁에 계셨다. 처음 6개월은 통증도 없고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는 좀 힘들어하셨지만 이대로 건강해지시는 건 아닌지 기대할 만큼 평소와 다를 바 없으셨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하자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지셨다. 식사와 체력도 그렇지만 문제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이었다. 본래 아프다는 말을 거의 안 하시는 분이었는데 암으로 인한 통증은 상황이 달랐다. 

아버지의 극심한 통증과 패치… 그리고 환각

결국 병원에서는 마약성진통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듀로제식디트렌스 패취. 적은 용량으로 시작된 패치는 순식간에 단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패치 약효가 다 될 때면 빠르게 약을 교체해야 할 만큼 약으로 버티셨던 것 같다. 이 무렵부터 이상한 말씀을 하시기 시작하셨는데 바로 귀신 때로는 저승사자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때마다 필자는 패치 속 성분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아버지를 안심시켜드렸다. 하지만 그 뒤로도 아버지는 계속 있지도 않은 것들이 보인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환영을 무서워하진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약성진통제를 사용해서 통증은 없어졌지만 환각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마약의 효과로 무섭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셨던 것 같다. 통증이 사라진 것처럼 정상적인 사고력도 사라지고 있었다.

펜타닐의 두 얼굴 

통증은 때로는 생명을 지켜주지만 만성화되거나 극심한 통증은 그 자체로 삶을 파탄낼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위해요소다. 일상 속 통증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머리가 아프거나 치통이 있을 때 이를 있는 그대로 견디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 진통제 복용 후 통증이 사라지면 그것만큼 행복한 시간이 또 있을까? 만일 진통제를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통증이 있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그런데 이러한 통증을 해결해주는 ‘약’이 있다. 바로 펜타닐이다.

펜타닐은 마약성진통제다. 통증이 극심한 환경이 됐을 때, 일반적인 진통제로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약이다. 펜타닐은 감각신경을 전달하는 척수와 대뇌의 뮤-수용체(아편유사체 수용체 일종)에 직접 작용한다. 즉 통증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강력한 효과 때문에 일반적인 진통제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효과가 무려 모르핀의 50~100배가 된다고 하니 정말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모르핀 류가 유발하는 다른 부작용이 적게 나타나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 매우 다빈도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펜타닐은 주사제로 사용하면 신속하게 효과가 나타나 수술 후 통증관리에 정맥 주사로 사용하기도 한다. 수술 후 또는 자연분만 후에 극심한 통증을 줄이기 위해 투여하는 ‘무통주사’의 성분이 바로 펜타닐인 것이다. 이러한 강력한 통증완화효과는 저용량을 단기간 사용하면 거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고용량을 장기간 사용하는 경우다.

이는 펜타닐 패치를 지속적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다. 피부를 통해 흡수돼 효과가 나타나는 펜타닐 패치는 약효가 24시간 정도 지나야 제대로 발휘된다. 한 장 붙이면 3일간 효과가 지속되기 때문에 몇 장만 사용해도 10일은 훌쩍 넘기게 된다. 저용량으로 사용하다가 점차 용량을 높이게 되는데 고용량 사용 시 갑자기 중단하면 더 강력한 통증에 시달리게 된다. 통증뿐 아니라 수면장애, 설사, 구토, 손발 떨림, 약물에 대한 갈망 등 금단증상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극심한 통증을 겪는 사람에게 신이 내린 천사와 같았던 마약성진통제는 통증의 근본원인이 치료되지 않는 한 마약성진통제에 의존하게 만드는 악마의 모습 또한 갖고 있는 것이다.

진통제가 마약으로 변하는 이유

또 다른 문제는 진통제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될 때 발생한다. 펜타닐이 바로 모르핀, 즉 아편과 같은 수용체에 작용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펜타닐이 대뇌에 작용하면 아편처럼 흥분을 억제하는 신경을 막아 버린다. 흥분 기전이 제어되지 않는 대뇌는 그야말로 대량의 도파민과 같은 흥분성 뇌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게 된다. 펜타닐 또한 환각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펜타닐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펜타닐을 합법을 가장한 불법으로 처방받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졌다. 지난 3년간 펜타닐 패치 처방이 67%나 증가했다는 통계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국내 중증 통증환자가 그렇게 빠르게 증가했다고 볼 순 없기 때문에 결국 다른 용도로 처방받은 사람들이 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패치는 파스처럼 피부에 붙여 효과를 보는 제형이다. 경피로 흡수되면 흡수가 느리기 때문에 당연히 빠른 환각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본래 패치 형태를 지속적인 통증 조절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마약과 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패치에 묻어 있는 펜타닐성분 부분만 가루로 만든 후 코로 흡입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코로 흡입된 펜타닐은 바로 혈액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급격한 효과를 낸다. 지난 2021년 부산·경남지역 청소년 펜타닐 사건 역시 구입한 펜타닐 패치를 코로 흡입해 투약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그야말로 통증을 관리하는 도구가 중독성 마약이 되는 순간이다.

너무 쉽게,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쉽게 약을 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정말 조절하기 어려운 통증에만 사용하도록 돼 있는 마약성진통제가 어떻게 이렇게 쉽게 구해지는 것일까? 바로 의료기관의 처방과 약국에서의 조제가 일사천리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국일보에 2020년 6월 23일 실린 기사를 보면 기자가 서울에 있는 한 의원을 찾아가 펜타닐 패치 처방을 받았던 사례가 나온다. 기자가 허리를 다쳐서 펜타닐 패치를 붙여 왔다고 둘러대자 고용량 100ug/h 펜타닐 패치를 10장 처방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무려 한 달 사용량이다. 병원에 가서 접수, 진료, 처방을 받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7분. 약국에서 구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매우 짧았다. 17만2520원과 10여분의 시간을 투자해 고용량 펜타닐 패치 10장을 합법적으로 구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위조된 신분증을 이용하거나 제3자를 이용한 구매도 성행한다는 것이다. 정말 너무도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세상.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 주소다.

중독과 금단증상에 이어 죽음까지

미국에서 7분마다 1명씩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마약이라고 부르는 펜타닐. 펜타닐은 소량만 흡입해도 치사량에 이른다. 20~40대 약물중독의 최대 원인이 펜타닐이라고 하니 정말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합법적 펜타닐도 문제지만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펜타닐도 매우 많기 때문에 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전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바로 젊은층의 펜타닐 오남용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자료를 살펴보면 펜타닐 패치 처방건수는 10대 이하에서 2965건, 20대에서 6만1087건으로 집계됐다. 펜타닐 패치는 18세 미만은 사용할 수 없으니 18·19세에게만 3000건에 가까운 펜타닐 패치가 처방됐다는 말이다. 정상적인 통증 경감을 위해 패치를 사용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펜타닐 패치 유효성분을 불법으로 흡입하면 중독과 금단증상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용량 자체가 조절이 안 된다는 데 있다. 펜타닐은 매우 적은 2mg만으로도 호흡곤란을 일으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잠깐의 환각을 즐기려 다 영원토록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마약도 물론 문제지만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마약은 더 큰 문제다.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마약류 유통부터 처방과 조제, 사용, 폐기까지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새는 구멍이 많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펜타닐 패치와 같은 실제 마약을 처방받는 경우에는 신분증과 함께 철저하게 본인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마치 출입국 심사처럼 방문자 얼굴을 동시에 체크해야 처방 입력이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한다. 또 본인이 호소하는 증상 외에 진단서 실제 마약성진통제를 복용해야만 하는 적합한 사유를 반드시 첨부하게 해야 할 것이다. 

약사가 약을 투약할 때도 실제 의료보험증을 확인하고 신분증과 대조해 본인이 투약받는 것이 맞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오남용이 의심될 때는 바로 의료기관에 연락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약을 만들고 판매하는 제약회사 역시 마약류진통제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는 대중교육에 힘 쏟아야 한다. 이윤을 남기는 것만큼 사회 안전을 위해 투자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실시간으로 마약 데이터를 검토해 빠른 시간 내 오남용을 적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여건일 수 있지만 지금은 병원과 약국, 제약회사, 정부가 모두 힘을 모아 마약류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엄중한 시기이다. 미국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이 먼 나라 이야기 같은가? 여기 대한민국, 그것도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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