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같은 병원 다른 세상’ VIP병실
[시시비비]‘같은 병원 다른 세상’ VIP병실
  • 김치중 기자
  • 승인 2013.11.06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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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계의 각종 민감한 이슈를 공정한 시각으로 취재하고 분석하는 김치중 기자의 ‘시시비비’가 매주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요즘 노조파업으로 시끄러운 서울대병원. 로비는 환자와 농성중인 노조원이 뒤섞여 정신이 없다. 그런데 유독 조용한 곳이 있다. 바로 본관 12층에 있는 VIP병실이다. 서울대병원에서 특실이 아닌 진짜 VIP병실은 4개에 불과하다. 이곳에는 김승연 한화그룹회장, CJ그룹 이재현 회장 등이 머물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VIP병실에서 치료 중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난 8월 병실이 없어 서울대병원 암병동 특실에 입원했다. 전직 대통령도 들어갈 수 없는 말 그대로 VIP병실인 셈이다. 서울대병원 노조원들이 20만9천원 임금인상을 위해 칼바람을 맞으며 병원과 대립하고 있는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성주 의원(민주당)이 국회 국정감사 시작 전날인 지난달 10일 전국 41개 대학병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VIP병동·병실현황을 공개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이들 병원은 96개 VIP병동과 430개 병실을 운영 중에 있다.

VIP병실을 가장 많이 운영하고 있는 병원은 삼성서울병원으로 김 의원에 따르면 15개 병동 61개 병실을 보유하고 있었다.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들은 VIP들을 모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해 전국 대학병원 VIP병실을 이용한 환자는 6만6414명으로 이중 1만3930명은 삼성서울병원을 애용했다. 삼성서울병원은 “김 의원이 밝힌 숫자에 오류가 있다”며 VIP병실규모·이용환자수 1위라는 자료가 공개된 것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모든 분야에서 1위를 하는 것이 목표인 삼성인데도 이런 1위는 반갑지 않은가 보다.

병원들은 한결같이 VIP병실 운영이 병원운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간호사, 의사 등 의료인력들이 VIP들을 모시느라 피로가 쌓일 뿐 아니라 병원 이미지에도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말은 그런데 하루 입원료가 최고 430만원에 달하는 VIP병실이 병원운영에 정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또 유명인사들이 병원을 많이 찾을수록 병원가치가 상승하는데 말이다.

최근 이화여대생 청부살인 용의자 윤모 씨가 유방암 등을 이유로 형집행정지 허가를 받고 VIP병실에서 호화롭게 생활한 것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국민들이 그를 비난하는 것은 죄를 짓고도 질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처분을 받아 석방돼 유유자적하게 생활했기 때문일 것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 3월까지 987명의 형집행정지자 중 95%인 938명이 질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처분을 받아 석방됐다. 이들 중에는 지금 서울대병원에 계시는 재벌회장도 포함된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고 병을 회복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우리 인생을 압축한 곳이 바로 병원이다. 지금도 아이가 아픈데 병실이 없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응급실에서 아이와 함께 밤을 지내고 있을 부모, 수술비가 없어 수술하지 못하고 병원을 나서야 하는 이들, 의사들의 설명을 하나라도 더 듣고 싶어 회진시간만 되면 귀를 쫑긋 세워야 하는 이들에게 VIP병실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VIP병실을 이용하는 환자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부를 이용해 보다 나은 진료서비스를 받는 것이 무슨 흠인가. 하지만 휠체어도 모자라 침대에 누워 법정에 출두하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을 연출한 일부 인사들이 편히 쉬는 곳이 대형병원 VIP병실이라면 국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를 떠올리지 않을까. 그나저나 기자는 평생 VIP병실을 한번이라도 이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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