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다 같은 부모 마음…유전자검사로 ‘키’도 예측할 수 있을까?
[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다 같은 부모 마음…유전자검사로 ‘키’도 예측할 수 있을까?
  •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7.1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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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부모 입장에서는 성장기 자녀의 키가 또래보다 작은 편이면 우유나 콩 등을 많이 먹이면서 좀 더 자랐으면 한다. 하지만 기대만큼 키가 안 크면 남편은 아내 탓, 아내는 남편 탓을 하며 서로 타박한다.

인간이 가진 그 어떤 특성보다 키가 유전적 성향이 있다고 믿게 된 것은 부모 키가 자녀에게 그대로 영향을 주는 증거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키는 유전자 탓일까? 부모가 작다면 어쩔 수 없이 작은 키로 살아야하는 운명인 걸까?

판문점에 나란히 서 있는 UN군 병사와 남한 병사, 북한 병사를 보면 UN군과 남한군인의 키 차이는 인종 간 차이, 즉 유전적 차이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남한과 북한 군인의 키 차이는 유전적 차이가 아닌 환경적인 차이, 즉 어릴 때부터 절대적으로 단백질의 양이 적고 많음에 따라 발육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키는 환경적인 요인도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태아를 임신하고 있는 산모의 영양상태는 자녀의 키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데 이것을 후성 유전학이라고 한다.

또 한 가지. 한 인구 집단의 평균 키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 중에는 ‘자연 선택’이란 개념이 있다. 예를 들면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평균 키가 큰 나라는 네덜란드인으로 남자의 평균 키가 184cm, 여자는 무려 171cm나 된다. 이는 같은 유럽인인 독일 남자의 180cm, 이탈리아 176cm보다도 월등히 높다.

심지어 1860년 네덜란드인의 평균 키는 165cm 정도였다. 이 짧은 시기에 유전자가 바뀐 것도 아니고 다른 국가에 비해 영양이 월등한 것도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키 큰 사람끼리만 결혼하는 자연 선택이 집중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런던 위생 열대 대학원의 게르트 스톨프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네덜란드 북부에 거주하는 9만4500명의 인구를 분석한 결과 자녀가 많은 그룹의 평균 키는 자녀가 적은 그룹의 평균 키보다 무려 7cm나 더 컸다고 한다. 키가 큰 부모들이 자녀들을 더 많이 낳으면서 인구 전체의 키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키는 상당 부분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과학자들은 키에 미치는 영향 중 유전적 요인을 50에서 많게는 80%까지도 본다. 지금까지 약 700여 개의 유전자가 키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중 몇 가지 유전자는 희귀적으로 큰 키 또는 작은 키에 영향을 준다.

대표적으로 FGFR3 유전자에 변이가 있으면 흔히 난장이로 불리는 연골무형성증을 일으키고 FBN1 유전자는 거인의 모습을 갖게 하는 말판증후군을 일으킨다.

하지만 일반적인 키는 보통 훨씬 많은 유전자들의 조합으로 결정된다. 어떤 조합으로 키를 예측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들이 진행돼왔다. 최근에는 대규모 코호트를 기반으로 머신러닝 같은 AI 방법을 활용해 유전자만을 갖고 키를 예측하는 프로그램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필자도 유전체 보관 및 활용 앱인 마이지놈박스에서 빅데이터 기반의 키 예측 프로그램으로 유전자만을 갖고 키를 예측했더니 실제 키와 거의 같았다. 만일 성장기 이전에 성장 후의 키를 미리 예측할 수 있으면 작은 키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더 집중적으로 영양을 보충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등 키 크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이다.  

특히 성조숙증과 관련된 유전적 변이를 발견하면 2차 성장이 시작되기 전 호르몬 검사를 통해 성조숙증을 미리 진단·예방함으로써 키를 더 키울 수도 있고 성장호르몬이나 칼슘 등 키 성장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 경향을 예측해 맞춤 처방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유전자 검사는 개인의 결정된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키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인 특성이 유전자로만 결정되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유전적 소인에 대한 사전적인 지식을 통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미리 알고 환경적인 요인을 개선한다면 분명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다. 유전과 환경의 조화, 이것이 자녀들과 후손들의 키를 결정하는 지혜의 열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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