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이 진짜 있다? 놀라운 ‘비만 유전자’ 이야기
[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이 진짜 있다? 놀라운 ‘비만 유전자’ 이야기
  •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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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다이어트 열풍이 불면서 많은 사람이 효과적으로 체중을 줄이려 진료실로 찾아온다. 50대 중년 여성은 한숨을 쉬면서 자기는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하소연 하고 반대로 또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고 하소연 한다.

비만의 가장 큰 원인은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는 생활습관이지만 개인마다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유전적인 차이라 부른다. 대략 비만의 30~60% 정도가 유전적인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비만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찾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해왔고 수많은 논문들이 발표돼 왔다. 그중 대표적인 유전자가 16번 염색체에 위치한 FTO라는 유전자다. 비만과 관련된 연구만 해도 2000개 이상의 논문이 발표됐고 전장유전체연관분석(GWAS)라고 하는 무작위적인 환자-대조군 연구에서도 늘 비만유전자로 최종 선정되는 유전자이기도 하다.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으면 비만이 될 확률이 30% 더 높고(BMC Med 2011), 심혈관질환과 뇌혈관질환이 걸릴 위험도 2배 가까이 증가한다(Ann Med 2015).

FTO는 지방을 저장하는 유전자로 그 자체로는 사실 인류를 생존시켜 왔던 유전자다. 네안데르탈인 시대나 신석기시대처럼 아직 농경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던 고대시대에는 사냥을 통해 식량을 얻었기에 식사가 불규칙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사냥할 것이 없는 겨울에는 며칠 못 먹는 날이 많았다. 이때 생존을 위해서는 음식을 지방으로 저장하는 능력이 필수인데 FTO 유전자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농경문화와 산업시대를 거치며 인류는 자주 식사를 하고 지나치게 많은 열량을 소비하게 됐다. 여기에 교통수단까지 발달하면서 예전보다 덜 움직이게 돼 FTO는 결국 비만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서양인의 경우 이 유전자의 변이가 70% 가까이에 이를 만큼 흔하지만 한국인에게는 30% 미만에만 변이가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서양인과 한국인의 체형 차이를 설명하는 한 요인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식탐을 계속 불러일으키는 MC4R 유전자,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상작용으로 계속 먹게 만드는 BDNF 유전자,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렙틴유전자, 밤늦게까지 안 자게 하면서 음식을 먹게 만드는 CLOCK 유전자 등이 있다.

이들 모두는 탄수화물이나 지방 등이 체내에서 모자라 배고픔이라는 신호를 통해 최소한의 음식을 계속 먹게 하는 진짜 식탐과 달리 뇌하수체의 시상하부에 식욕이라는 신호 전달체계를 지나치게 자극해 불필요한 음식을 더 먹게 만드는 가짜 식탐과 관련된 유전자들이다.

만일 이들 식탐 유전자에 변이가 있어 비정상적인 식탐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굶는 다이어트는 실패로 이어질 것이다. 이 경우 식탐을 억제하는 약물을 사용하거나 열량은 낮지만 포만감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으로 식탐을 달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은 탄수화물은 극도로 적게 먹고 대신 지방을 통해 열량을 섭취하는 이른바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유행이다. 하지만 환자 중에는 저탄고지를 따라했지만 오히려 살이 더 찌고 중성지방 수치가 올라간 경우가 있었는데 이 환자는 FTO 에 변이가 있었다. 이 경우 고지방식이는 몸에 해로운 것이다.

이처럼 비만의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각자 맞는 다이어트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저탄수화물, 저지방식이, 지중해식이, 항산화식이 등 나에게 맞는 음식을 추천하며 더 나아가 맞춤운동까지 제안하는 프로그램들이 소개되고 있다.

비만 유전자가 남들보다 더 많이 있으면 평생 비만으로 살 것인가? 유전자를 마치 운명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유전자검사는 오히려 절망감만 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연구들이 유전자와 운동, 음식 같은 환경적 요인을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FTO 유전자에 변이가 있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는 그룹은 FTO 유전자에 변이가 없지만 운동을 하지 않는 그룹보다 오히려 더 날씬한 체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비만과 같은 만성질환은 태어나기도 하지만 만들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유전적 소인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이 유전자에 맞게 설계됐던 인류의 삶의 방식, 즉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던 시대로 돌아가서 규칙적인 운동과 올바른 식습관으로 건강하고 날씬한 몸을 만드는 똑똑한 소비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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