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음식이 과연 유전자를 바꿀 수 있을까?
[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음식이 과연 유전자를 바꿀 수 있을까?
  •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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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원장
김경철 원장

내가 매일 먹는 음식이 유전자를 바꿔 질병을 일으키거나 또는 반대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기도 하고 그렇기도 하다.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받은 특성이며 염기라는 변이는 결코 바뀌지 않고 다시 후손에 물려주게 된다. 이 점에서 볼 때 음식이 유전자의 구조를 바꿀 순 없다.

하지만 유전자의 발현(expression) 기능은 음식 등 환경적인 요소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백열등, 형광등, 수은등은 제각각 밝기와 수명을 타고 났지만 그 전등이 스위치를 통해 켜지고 꺼지는 건 후천적으로 바뀔 수 있다.

음식도 대표적인 유전자 스위치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학문을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고 부른다. 즉 후성유전학은 선천적인 돌연변이가 아닌 음식, 생활습관, 스트레스 등 후천적인 요인이 DNA에 영향을 줘 질병을 일으키거나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연구하는 최신 학문을 말한다.

단적인 예로 쌍둥이를 들 수 있다. 태어나서 같은 유전자를 타고 나도 살아온 환경이 다르면 각각 다른 질병이 생길 수 있다. 질병의 환경적인 요인을 설명하는 아주 좋은 예다.

꿀벌의 경우 일벌과 여왕벌은 모두 여성벌이다. 꿀벌은 불과 4주 정도밖에 살지 못하며 불임인 반면 여왕벌의 경우 1년 이상을 살며 평생 200만 개의 알을 낳는다.

이 두 벌 간의 유전학적인 차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태어난 지 4일 정도된 유충에 일반적인 화분을 먹이는 경우 일벌로 자라고 로얄젤리를 먹고 자란 유충은 여왕벌이 된다. 즉 음식이 생식과 관련된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고 끄게 만든 것이다.

특히 암이 생기는 과정에서는 환경적인 요인들이 유전자의 스위치인 전사부위에 영향을 줘 DNA 메틸화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현재 이 DNA 메틸화를 포함한 후성유전학적 기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엽산이나 비타민B, 녹차, 강황, 베리류의 항산화식품 등이 모두 DNA 메틸화를 포함한 후성유전학적 기전으로 암 유전자 스위치를 꺼서 암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사람은 태어나기도(nature) 하지만 만들어지기도(nurture) 하는 것이다. 이때 매일 먹는 음식이 사람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후성유전학의 한 분야 중 임신기간 먹는 음식에 따라 자녀의 질병이 결정된다는 태아 재프로그램(fetal reprogram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보통 어른들이 음식과 정서를 신경 쓰는 것이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데 오랜 경험과 지혜로 내린 그 결론이 현대의학에서 유전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대표적인 연구로 임신한 엄마 쥐에 각기 엽산의 양이 다른 음식을 먹였더니 자녀 쥐의 피부색이 검거나 얼룩무늬 또는 희거나 노란 피부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아구티 쥐에서는 검거나 얼룩무늬 피부의 쥐를 건강하거나 오래 사는 쥐로 보고 노란 피부의 쥐는 암, 당뇨 등 여러 질병에 걸린 쥐라 판단한다. 이 연구를 통해 산모 때 먹는 특정 음식과 스트레스 등의 환경이 본인뿐 아니라 후세대의 DNA에 영향을 줘 질병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좋은 유전자를 타고 났든 그렇지 않든 중요치 않다. 매일 건강한 음식을 먹고 음주, 흡연, 스트레스를 멀리하며 적절한 운동과 수면으로 더 건강한 몸을 만들어가는 것이 참된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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