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이제 약물도 ‘개인 맞춤처방’시대
[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이제 약물도 ‘개인 맞춤처방’시대
  •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4.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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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가정의학과전문의
김경철 가정의학과전문의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Προκρούστης)라는 거인은 아테네에 집을 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도 짓을 했는데 사람을 침대에 눕힌 뒤 침대 사이즈보다 긴 사람은 다리를 잘라 죽이고 침대 사이즈보다 작은 사람은 늘려 죽였다고 한다.

다소 끔찍한 이야기지만 현대의학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현대의학은 공중학적 보건 데이터에서 얻은 평균적인 지침을 강조하는 근거중심의학에 기초하는데 문제는 진료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는 개인마다 편차가 있어 이 지침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약물 처방이다. 누군가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약도 또 다른 이에게는 잘 듣지 않고 부작용만 나타나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의사생활 초년 시절 일주일에 한 번씩 복용하는 골다공증 치료제를 주로 처방하곤 했다. 그렇게 1년을 꼬박 복용하고 나서야 골밀도 측정을 통해 효과를 알 수 있는 약이었다.

환자들에게 처방할 때는 약 4% 정도 골밀도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약을 복용하게 했는데 막상 1년 뒤 골밀도를 측정해보니 오히려 골밀도가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약을 복용하자마자 온몸이 아파서 응급실로 오는 환자도 있었다.

또 골다공증 치료제는 장기 복용 시 1000명당 3명꼴로 턱관절 괴사가 생길 수 있어 치과 치료 시 주의를 요하기도 한다. 문제는 누가 이 약에 효과가 있을지, 누가 턱관절 괴사가 생길지 미리 알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일단은 모두가 같은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

유전체 의학의 발달은 평균의학이 아닌 개인 맞춤의학으로 이끌어 사람마다 약을 다르게 처방하게 한다. 이를 약물유전학(Pharmacogenomics)라고 한다.

약의 경우 간이나 신장에서 주로 대사되는데 이 과정은 사이토크롬 450이라는 효소를 통해 이뤄진다. 단 효소의 활성도는 사람의 유전적 차이로 인해 달라지는 만큼 체내 약물 농도에도 차이가 난다.

대표적인 약제가 와파린이라는 혈액응고억제제다. 뇌경색이나 심방세동 등의 증상으로 응급실에 오면 가장 먼저 투여하는 약이다.

특히 와파린은 조금만 농도가 높아지면 출혈로 인해 뇌출혈 등이 생길 수 있어 인턴들은 시간마다 피를 뽑아 혈액 내 응고시간을 체크해야했다. 하지만 CYP2C9, VKORC1 등의 유전자 변이에 따라 체내 와파린의 농도를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됐다. 미국 FDA에서는 이 유전자검사를 통해 와파린의 농도를 사람마다 8배나 차이 나게 투여하라고 지침을 내리고 있다.

의사 처방 없이 소비자가 직접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23&me 라는 회사는 2018년 11월 미국 FDA로부터 승인을 얻어 약물대사 관련 유전자 8종(CYP2C19, CYP2C9, CYP3A5, UGT1A1, DPYD, TPMT, SLCO1B1, CYP2D6)에 대한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자신의 유전정보를 미리 알게 돼 약물 부작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시대를 먼저 경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18만 명이 약물 관련 부작용으로 사망하는데 이는 전체 사망률의 3위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약물 유전체의 발전은 항암치료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기존 항암제의 경우 치료 실패율이 70%나 되며 무엇보다 항암제에 따른 부작용이 심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동반진단이라는 유전적 변이 검사를 통해 ‘맞춤 항암제’를 처방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얼빅투스, 이레사, 글리벡 같은 항암제가 여기에 해당된다.

특별히 한국은 세계 최초로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유전체 검사를 보험급여로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 역시 유전자 검사에 국가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을 살리고 더 나아가 보건경제적으로도 이득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누구나 개인 유전자 정보를 스마트폰 등을 통해 쉽게 열람하고 환자의 고유 정보에 근거해 약물 처방이 이뤄지는 진정한 의미의 개인맞춤의학·참여의학 시대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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