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훈의 간(肝)편한 삶] 간질환 종합선물세트…간염·간경변·간암
[안상훈의 간(肝)편한 삶] 간질환 종합선물세트…간염·간경변·간암
  • 안상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 승인 2017.10.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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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모든 아이들의 꿈은 종합선물세트를 받는 것이었다. 과자 한 봉지 사먹기도 어렵던 때라 다양한 종류의 과자가 한꺼번에 든 종합선물세트를 받으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원치 않는 과자가 들어있을 것이란 생각은 미처 못했다. 좋아하지 않는 걸로 가득 차 있는 종합선물세트는 상상하기도 싫다.

안상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우리는 살면서 질병 종합선물세트를 받을 때가 있다. 운동부족으로 비만해지면 당뇨와 고지혈증이, 동맥경화증이 발생하면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생길 수 있다. 정말 원치 않은 선물이지만 한 가지 병이 생기면 연쇄적으로 다른 질병이 함께 온다.

만성간질환 역시 다를 바 없다. 간암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병이 아니다. 만성간염이 오래되면 간경변이 되고 마지막으로 간암이 생긴다. 따라서 대다수의 간암환자가 간염과 간경변을 함께 갖고 있다. 약 10%의 간암은 간경변 없이 발생하지만 여전히 만성간염은 존재한다. 간염, 간경변 그리고 간암은 그야말로 간질환 종합선물세트다.

2013년 중앙암등록본부 보고에 따르면 간암환자의 5년 관찰생존율은 꾸준히 증가해 2000년 10.7%에서 2011년에는 28.6%까지 향상됐다. 하지만 간암은 여전히 췌장암, 폐암 다음으로 예후가 나쁘다.

간암은 간염, 간경변이 동반돼 있어 완치가 쉽지 않다. 간 전체가 병든 상태라 간암이 생겨도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곳에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난다. 간경변으로 간기능도 떨어져 있어 수술로 절제하기도 어렵다. 간은 중요한 장기이고 하나밖에 없어 다른 암처럼 마구 잘라낼 수 없다. 일부를 잘라내도 남아 있는 간은 간염이나 간경변으로 이미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 재발할 확률이 높다.

간경변은 중고자동차와 같다. 자동차를 오래 사용하면 모든 부품이 낡게 되듯 간도 오랫동안 염증이 있으면 딱딱해져(섬유화) 간경변이 생긴다. 어느 한 부위가 아니라 간 전체가 딱딱해진다. 중고자동차는 수리하더라도 또 고장나기 때문에 새 차로 교체해야 한다.

간이식은 중고자동차를 새 차로 바꾸는 것과 같다. 그야말로 병든 간을 건강한 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건강한 간은 간염과 간경변이 없으므로 당연히 재발할 확률이 거의 없다. 간이식은 간암의 유일한 완치법이다.

하지만 간을 기증받는 일은 참 어렵다. 뇌사자를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내 80% 이상의 간이식이 혈연 간에 생체간이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신장이식과 달리 백혈구조직적합항원검사가 필요 없고 ABO혈액형이 맞지 않아도 가능하다.

“어떻게 멀쩡하던 사람에게 간암이 생기나요? 아직도 건강해 보이는데.” 간암을 진단받았을 때 많은 환자와 보호자가 당혹해하지만 큰 병은 갑자기 오는 법이 없다. 단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간질환은 뚜렷한 증상이 없어 더더욱 알아차리기 힘들다.  

간질환 종합선물세트를 받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간염예방과 조기진단 그리고 철저한 관리다. 간염예방접종과 건강한 생활습관은 만성간염을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단추다. 이미 간경변이 발생했다면 간암을 완전히 막을 순 없다. 따라서 정기검진을 통해 만성간염을 조기진단하고 간경변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 정리 장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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