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되찾은 소중한 시력
우리나라에서 되찾은 소중한 시력
  • 헬스경향 일산무지개성모안과 동은영 원장
  • 승인 2016.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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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에 미소가 가득한 중년남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멀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Ethiopia)에서 사업차 한국을 방문했단다. 귀국하기 전 백내장수술을 받기 위해 왔노라고 했다. 이미 본국에서 백내장진단을 받고 수술하려던 터라 의료기술이 뛰어난 우리나라에 온 김에 수술받으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는 만만치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동공이 잘 열리지도 않고(백내장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동공을 크게 열어 놓아야 하는데 이를 ‘산동’이라고 한다) 백내장은 매우 심해 당장 수술해야하는 상태였다.

동은영 일산무지개성모안과 원장

게다가 반대쪽은 황반변성(시세포가 밀집돼 있는 망막중심부에 위치한 황반이 손상되면서 시력장애가 생기는 질환)이 있어 시력이 0.2밖에 나오지 않았다.

사흘 후면 귀국이라 시간도 얼마 없었다. 이 경우 의사입장에서는 수술이 꺼려질 수밖에 없다. 산동도 되지 않고 백내장도 심해 일반적인 경우보다 문제발생확률이 훨씬 높기 떄문이다.

만일 큰 문제가 발생해 대학병원에 전원이라도 해야 하는 날에는(매우 드물게 망막수술이 필요한 경우 대학병원으로 전원해야하는데 아직 우리 안과에서 그런 경우는 없었다) 보험도 없는 환자인데다 치료비문제도 있었다.

또 전원이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좀 더 경과를 지켜볼 상황이 생겼을 때는 사흘밖에 없는 시간 때문에 난감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쉽사리 물러설 순 없었다.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에서 온 환자라면 치료시간이 부족하니 본국에서 수술하라고 돌려보냈을 테지만 이 환자의 고국은 아프리카의 빈국이다. 시력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인,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사흘이 주어진 것이다. 필자는 수술을 결정하고 그날 오후 바로 수술을 감행했다.

보통의 경우에는 수술 전 필요한 검사를 하고 사흘간 미리 안약을 넣고 수술하게 되며 검사와 수술일까지는 1주일 이상 간격을 둔다.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 오전에 검사하고 바로 오후에 수술했다. 예상대로 수술은 어려웠지만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환자는 수술 다음날 바로 1.0의 시력을 회복했고 미소는 더욱 밝아졌다.

알고 보니 그 환자는 약학박사였다. 우리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고 필자의 이메일주소까지 적어갔다. 귀국 후에는 수도인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의 종합병원에서 경과를 보겠다고 약속했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지만 가끔 이 환자가 생각난다.(수술한 눈의 반대쪽 눈은 황반변성으로 치료불능상태였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온 힘을 다했기에 결과에서 오는 행복감과 보람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은근히 기대했지만 이메일은 결국 오지 않았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어딘가에서 밝아진 눈으로 활기차게 일하고 있으리라. 가끔은 우리나라도, 또 우리 안과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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