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난시환자에게 펼쳐진 새로운 인생 2막
고도난시환자에게 펼쳐진 새로운 인생 2막
  • 일산무지개성모안과 동은영 원장
  • 승인 2016.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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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40대 남성이 조심스런 걸음걸이로 진료실에 들어왔다. 캐주얼한 옷차림에 야구모자를 써서인지 나이보다 꽤 젊어 보였다. 하지만 필자를 쳐다보는 눈빛은 멍하니 초점이 흐려보였다.

이 환자는 단순한 알레르기성 결막염이나 다래끼로 필자에게 진료를 몇 번 받았는데 당뇨를 앓는 분이라 눈에 당뇨합병증이 있는지 검사했다.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동은영 일산무지개성모안과 원장

매우 심한 고도근시에 고도난시까지 있어 라식 같은 시력교정술은 물론 안내렌즈삽입술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굴절력은 양안이 비슷한 상태로 근시가 마이너스 18디옵터에 난시가 7디옵터였다. 근시가 마이너스 6디옵터를 넘으면 고도근시라고 하고 난시가 3디옵터를 넘으면 매우 심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환자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직업이 요리사인데 평생 안경을 끼지 않고 생활했다는 것이다. 아마 고도난시로 인해 안경의 어지러움을 감당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된다.

환자의 시력은 코앞까지 와야 겨우 볼 수 있는 상태였고 그것도 난시가 심해 명료하게 볼 수 없었다. 안경을 쓴다 해도(도저히 착용할 수 없는 도수기는 하지만) 최대교정시력이 0.2 정도다. 세상에 만만한 인생이 어디 있겠나만 이 환자의 인생이야말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시력교정백내장수술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이 수술은 눈 속의 혼탁한 수정체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인공렌즈를 삽입하는 수술인데 난시교정용렌즈를 사용하면 근시는 물론 난시까지 교정할 수 있다.

고도근시인 경우, 더구나 이렇게 고도난시까지 함께 있는 경우는 안경으로 잘 교정되지 않지만 눈 속에 렌즈를 삽입하면 대부분 기대이상의 시력이 나온다. 눈 속에 들어가는 렌즈이기 때문에 안경처럼 어지럽지도 않으며 본래 난시가 없던 것 같은 상태가 된다.

필자는 백내장도 약간 있으니 난시교정백내장수술을 권유했다. 환자는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사람이었고 정말로 좋아질 수 있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로 되풀이해서 물었다. 사실 수술을 위해 찾아오는 환자에게는 별 문제 없지만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수술을 권유하는 것은 의사에게 있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돈벌이한다는 의심도 있거니와 이렇게 초고도근시인 경우 수술 후 약간의 합병증위험도 있어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기면 심각한 의료분쟁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수술얘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필자는 어렵지 않은 절차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데 혹시 모를 합병증이 두려워 포기하기에는 환자의 젊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환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수술을 결정했고 필자는 검사를 통해 눈에 들어갈 렌즈의 도수를 결정했다. 워낙 특별한 도수라서 독일에서 주문제작해야 했고 국내로 들어오는 데 한 달 이상이나 걸려 수술은 그 이후에야 할 수 있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매우 좋았다. 맨눈으로 우안은 0.6, 좌안은 0.3이었고 얇은 안경을 끼면 양안 모두 0.7이 나왔다. 환자는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애써 참는듯한 기분 좋은 미소가 환자의 입에서 번졌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지만 한 인생의 무게를 덜어줬다는 보람에 필자는 어깨가 으쓱했다. 환자는 자신의 시력을 언급하며 더 잘 볼 수는 없느냐며 기분 좋은 투정을 했고 어디 가서 시력검사를 했더니 0.8 이더라는 얘기를 하면서 이제는 보통사람이 된 기쁨에 고무된 듯했다.

수술 후 그는 전 직원에게 커피를 돌렸다. 워낙 고마움을 표시하는데 익숙지 못한 환자였기에 그날의 커피 한 잔은 어느 값진 선물 못지 않았다.

이제 그는 음식 속의 머리카락이나 이물질을 잘 발견할 것이고 코앞에 와야만 사물이 보였던 과거, 주로 기억력에 의지했던 생활습관을 보통사람처럼 느낄 수 있게 됐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만끽하고 스포츠도 즐기게 될 것이다. 또 하나,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선명하게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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