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수술 후 찾게 된 새로운 삶
백내장수술 후 찾게 된 새로운 삶
  • 일산무지개성모안과 동은영 원장
  • 승인 2016.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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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여 년 전의 일로 어느 곳에서 봉직의로 근무할 때였다. 40대의 젊은 여성이었는데 오른쪽 눈은 백내장으로 거의 실명상태였고 왼쪽 눈은 예전에 다친 후 각막혼탁이 심해 시력이 약한 상태인 데다 백내장까지 동반된 상태였다.

처음부터 필자의 환자는 아니었고 다른 진료실에서 수술을 위해 인계받은 환자였다. 왼쪽 눈의 상태가 안 좋아 오른쪽 백내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오른쪽 눈에 의지해 생활했을텐데 이제 오른쪽 눈의 상태가 안 좋아져 오히려 왼쪽 눈에 가까스로 의지해 생활했을 것이다.

동은영 일산무지개성모안과 원장

이처럼 노인도 아니고 젊은 사람이 백내장 진행을 방치하는 때는 생활고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환자도 그랬고 늘 보호자 없이 혼자 다녔다. 차츰 어두워지는 시력과 병원에 가기조차 두려운 생활고에 돌봐주는 사람도 없는 암흑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타인으로서는 짐작하기 힘들다.

환자의 오른쪽 눈은 과숙백내장(백내장이 심하게 진행돼 동공이 백색으로 보이는 경우)으로 빛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라 당장 수술을 권유해 실행했다.

수술 후 다음날 바로 1.0의 시력을 회복했고 진료실을 더듬거리며 들어오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이제 한쪽 눈이 정상이 됐으니 각막혼탁과 백내장이 있는 왼쪽 눈도 치료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사실 반대쪽 눈이 온전하지 못하면 겨우 보이는 한쪽 눈을 수술하기란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치료해 양쪽 눈 모두를 잘 볼 수 있게 해주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왼쪽 눈의 수술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각막의 흉터와 꿰맨 상처로 눈 속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수술이 매우 힘들었다. 눈 속을 염색해 가까스로 볼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수술했고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왼쪽 눈은 교정시력이 0.5로 나왔고 환자는 매우 만족해했다.

그 환자는 며칠 후 필자에게 화장품을 선물했다. 필자는 그때 순간 표정이 굳어버린 채 “형편도 어려우신데…”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돈이 없어 수술도 못 받았던 형편에 몇 만원짜리 화장품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그 무게를 실감한 나머지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필자는 30대의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당황스럽거나 겸연쩍으면 귓불까지 새빨개졌던 터라 마음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그의 무안해하는 표정을 보면서 흔쾌히 받지 못한 스스로의 미숙함을 자책했던 적이 있다.

또 언젠가는 80대 할머니께서 쌈지에서 꼬깃꼬깃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건네셨을 때 괜찮다며 도로 넣어드렸더니 곧 표정이 굳어지셨다.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노인의 소중한 마음 표현을 어린애의 코 묻은 돈처럼 여겨 선의를 가장해 무시한 것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한다. 그때 소박한 선물일수록, 어려운 이웃이 건넨 선물일수록 더 흔쾌히 감사하게 받아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 40대 여성환자는 취직도 하고 완전하게 건강한 정상인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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