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너 있다?” 자가면역간염의 우울한 착각
“내 안에 너 있다?” 자가면역간염의 우울한 착각
  • 안상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교수 (AHNSH@yuhs.ac.kr)
  • 승인 2016.05.18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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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너 있다.” 2004년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수많은 여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이동건의 대사다. 하지만 더할나위 없이 낭만적인 이 대사를 우리 몸에 적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체는 다른 생명체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외부병원체가 침입했을 때 이를 방치하면 세포나 장기에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즉각 면역세포들이 쫓아가 공격하고 없애버린다.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이식환자는 자신의 면역반응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한다. 즉 의학적으로는 내 안에 너를 갖고 있을 수 없다.

안상훈 교수

우리 몸은 가끔 너무 예민해져 외부물질이 아닌 자기 몸의 세포나 단백질을 외부에서 침입한 물질로 착각하고 면역세포를 보내 공격하기도 한다. 적군과 아군을 구분 못하는 이 경우 간염, 관절염, 혈관염, 신장염 등 다양한 면역질환을 유발한다.

자가면역간염은 전체 간질환의 5% 미만에 불과할 만큼 드문 간질환으로 1950년 왈덴스트롬(Waldenstrom)에 의해 면역억제치료에 잘 반응하는 간질환으로 처음 기술됐다.

면역체계에 이상이 발생해 자신의 간세포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만성질환이다. 여자에게 더 흔하고 대부분 서서히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진행되지만 간세포가 급격히 파괴돼 전격성간염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피로, 권태, 식욕부진 같은 급성간염양상을 보이기도 하고 증상 없이 지내다가 황달이나 복수가 생겨 병원에 오는 경우도 있다. 특이한 점은 간 외에도 갑상선염이나 당뇨, 건선, 대장염, 관절염 등 다른 자가면역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 질환에 대한 확인검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진단받으면 산정특례가 적용돼 환자가 전체 진료비의 10%만 본인이 부담하는 큰 혜택을 받는다. 따라서 자가면역간염을 진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진단은 간기능검사, 자가항체검사 및 간조직검사 등을 종합해 결정하는데 특징적인 항핵항체(antinuclear antibodies, ANA)와 혈청감마글로불린 증가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질환과 관련된 여러 요인들을 점수화하는 점수제 진단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다른 희귀질환처럼 자가면역간염도 완치가 가능한 병은 아니다. 평생 정기검사와 치료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정신적·사회적 고통이 크다. 염증악화와 호전이 반복되고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간경변으로 진행된다.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 면역기능을 억제하기 위해 스테로이드나 아자티오프린이라는 면역억제제를 사용해 간염을 호전시킴으로써 생존율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약 부작용이 심하고 약을 중단하면 재발하는 경우가 많아 간경변으로의 진행을 완벽하게 막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간경변이 심하게 진행된 경우에는 간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내 간 속에 아무것도 없는데 착각 속에 빠져 자신의 간을 공격하는 자가면역간염은 의사들에게도 인지도가 낮아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진료실에서 무심코 돌려보냈다가는 눈이 노랗게 돼 다시 찾아오는 환자를 보게 될 수도 있다. 반복적으로 간수치가 증가하는데 뚜렷한 원인을 못 찾으면 자가면역간염을 의심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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