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에 숨어 있는 희귀질환(I)
간에 숨어 있는 희귀질환(I)
  • 안상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교수 (AHNSH@yuhs.ac.kr)
  • 승인 2016.02.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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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稀貴)’하다는 것은 매우 드물어 귀(貴)하다는 것을 뜻한다. 귀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인데 그 어원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귀(貴)는 물건을 담아두는 상자를 뜻하는 궤(櫃)에서 변한 글자다. 귀(貴) 글자 안에는 조개패(貝)가 있으니 조개를 가득 담아둔 상자를 의미한다. 옛날에는 조개가 화폐로 사용돼 결국 귀(貴)는 화폐가 많이 든 돈궤짝을 뜻하는 단어로 매우 소중한 것을 상징한다.

 

실제로도 드문 것은 값어치가 많이 나간다. 다이아몬드나 금 같은 귀금속은 산출량이 적어 값이 비싸다. 희토류(稀土類)는 휴대전화나 반도체 같은 첨단제품에 필수적인 자원인데 중국이 세계 생산량의 95%를 독점하며 자원무기로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흔치 않은 것은 귀해 보이지만 질병에 있어서만은 그렇지 않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병을 희귀질환이라고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잘못된 명명이다. 그냥 드문 질환이지 귀(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들 질환은 귀한 대접을 받기보다는 소외되기 일쑤여서 뚜렷한 치료법 없이 난치성질환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천억원을 들여 신약을 개발해도 이를 처방받는 환자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개발할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올바른 표현은 아니지만 희귀질환은 이제 보편화된 단어이므로 필자도 희귀질환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수가 2만명 이하이면 희귀질환으로 정의하는데 1066종의 희귀질환이 등록돼 있고 약 50만명의 환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

희귀질환의 80%는 유전질환이며 환자수가 매우 적어 관심을 갖는 전문가도 부족하고 검사법이 없는 경우도 있어 진단이 매우 어렵다. 게다가 치료도 쉽지 않아 확실한 치료법이 개발된 질환은 20여개에 불과하다.

간에도 희귀질환들이 발생하는데 자가면역간염, 원발성 담즙성 간경변증, 원발성 경화성 담관염, 중복증후군, 윌슨병이 대표적이다. 이 질환들은 대부분 증상이 없고 건강검진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워 간경변으로 진행돼서야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고 진단이 까다로워 원인불명의 간질환으로 남기도 한다.

자가면역간염, 원발성 담즙성 간경변증, 중복증후군은 자가면역성 간질환인데 과거에는 서양인에게서 많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원인미상의 간염이 반복되면 꼭 이들 질환을 의심해야한다.

희귀간질환은 서서히 간경변, 간암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평생 관리해야 하지만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줄일 수 있다. 다음 편에는 각각의 희귀간질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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