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나한테 왜 그랬성형?
성형외과, 나한테 왜 그랬성형?
  • 신민우 기자 (smw@k-health.com)
  • 승인 2016.01.0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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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우 기자의 ‘불타는 금요일 뜨거운 보건이슈’] 허전한 옆구리를 칼날 같은 바람이 스쳐갑니다. 이렇게 쌀쌀한 금요일, 이 기사로 추위를 녹여보세요. 우리나라 보건이슈는 언제나 뜨겁디뜨겁습니다. 되도록 푹신한 침대, 두툼한 이불 속에서 읽는 걸 추천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이불 밖은 위험하잖아요?

TV,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전철역 등 시선만 돌리면 성형외과병·의원 광고를 쉽게 접하는 세상입니다. 아름답게 미소 짓는 모델과 책임감 넘쳐 보이는 의사들. 가만히 보고 있자면 “나도 성형수술 한 번 받아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라고요? 에이, 거울부터 보고 다시 말해보세요.

▲ 유동인구가 많은 전철역사를 돌아다니다보면 성형외과 광고 속 아름다운 여인들로 인해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아니, 결코 ‘모두 비슷하게 생겨서’라고는 말 안했습니다.

우리는 성형수술을 받던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가끔 접하곤 합니다. 사실 양악수술, 안면윤곽수술 같은 대규모성형수술은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 위험하죠. 따라서 환자들은 유명한 의사, 실력 좋다는 의사들에게 수술을 받으려 합니다. 아무래도 그들이라면 위험부담이 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상상해보세요.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가 제 앞에 앉아 있습니다. 제 얼굴을 빤히 바라보죠. 결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서가 아니에요! 마침내 수술 당일, 의사가 수술대에 누워 불안해하는 저를 안심시킵니다. 마취상태에 이른 저를 바라보더니 휙 나가버립니다. 그리고 들어온 사람은……. 어? 생전 처음 보는 의사인데요?

언뜻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분명 유명의사와 어느 부위를 언제 수술할 지 상담했는데 정작 메스를 들고 있는 사람과는 일면식조차 없으니까요.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데 제 얼굴을 어떻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독자 여러분도 뉴스로 이런 상황을 접한 적 있을 겁니다. ‘불타는 금요일 뜨거운 보건이슈’ 두 번째 주제, 바로 ‘성형외과 유령수술’입니다.

먼저 유령수술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상담의와 집도의가 바뀌는 수술. 속된 말로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유명의사에게 수술 받으러 온 환자를 속여 마취시키고 다른 의사가 몰래 집도하는 행위를 유령수술 또는 대리수술이라고 말합니다. 검증되지 않은 의사를 두고 ‘그림자의사’ ‘섀도우닥터’라고 부르죠.

▲ 엥, 대리수술? 그거 완전 의료계 고질적 병폐 아니냐? 김광호 선배님, 감사합니다.(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렇게 몹쓸 의료행위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1999년 2월 1일 경향신문은 “모 의료원장이 특진환자수술을 후배의사에게 맡긴 것에 대해 법원이 사기죄를 적용했다”고 보도한 바 있거든요.

하지만 암암리에 이뤄지던 유령수술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13년 12월 강남 모 성형외과병원에서 여고생이 뇌사한 뒤입니다. 진상조사를 벌인 대한성형외과의사회(이하 의사회)가 2014년 4월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뒤 “일부 성형외과에서 대리수술, 면허대여와 같은 불법행위가 횡행하고 있다”며 그림자의사의 정체를 고발한 거죠. 목록에 해당 병원이 포함됐음은 물론이고요. 의사회는 해당 병원 대표원장을 회원직에서 제명하고 소속 원장 7명을 고발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 2014년 4월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유령수술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성형외과병원에 대한 고발조치가 들어갔죠. “내가 허리를 숙인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제대로 된 일격을 위해서는 추진력이 필요한 법!”

이에 대해 해당 병원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의사회를 고소했을 뿐 아니라 공정거래법 위반을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조치한 것입니다. 해당 병원은 “의사회가 확인도 안 하고 언론 등을 통해 대리수술의혹을 제기해 큰 피해를 입었다”며 “1년 넘게 참아왔지만 더 방관할 수 없어 형사고발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허위사실을 증명할 증거들을 찾았다는 말과 함께요.

현재 해당 병원과 의사회가 세운 대립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검찰이 이 병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유령수술뿐 아니라 다른 혐의도 조사하고 있죠. 이쯤 되니 해당 병원이 어디인지 궁금하다고요? 죄송하지만 실명을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 쉿, 그곳의 이름을 함부로 말해선 안 돼! 저도 관련 취재기사를 작성했다가 경찰서에서 진술서까지 썼거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곳뿐 아니라 강남 내 여러 성형외과병·의원들도 유령수술을 해왔다는 사실이죠. 지난해 제가 취재를 위해 만난 성형외과 관계자도 “강남에 있는 성형외과 대부분이 대리수술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성형외과 의사들은 이렇게 위험천만한 일을 하는 걸까요?

궁극적인 목적은 ‘이윤추구’입니다. 최대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다 보니 결국 전철역사는 성형외과광고로 뒤덮였고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의사들이 자신과 소속 성형외과를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들은 수술을 받기 위해 이들에게 몰려들었죠. “TV에 나올 정도면 수술실력도 좋지 않겠어?”라는 것이 환자들의 생각입니다.

물론 TV 속 의료인 대다수는 올바른 정보를 통해 국민건강에 도움을 주려는 분들입니다. 흑심을 품은 의사가 간혹 섞여 있는 거죠. 의사는 한정됐는데 환자들은 밀물처럼 성형외과를 찾습니다. 이들을 감당하려면 많은 손이 필요하겠죠? 결국 유명의사는 상담만 맡고 베일에 가려진 의료인들이 집도하게 됩니다. 바로 유령수술의 시작입니다.

몇몇 악질 성형외과는 수술 받는 환자를 속이기 위해 과다한 마취제를 투여했습니다. 뇌사한 여고생 역시 마취제로 인해 사망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죠. 더군다나 그림자의사들은 양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성형수술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피해자들은 어디에 하소연해야만 하나요?

지난달 22일 의사회가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저 역시 그 자리에 참석했죠. 이 가운데 “그림자의사들도 면허가 있지 않나?”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림자의사들 역시 의사면허를 가진 만큼 환자를 속인 도의적 부분이 아니라면 성형수술 자체는 문제없는 것 아니냐는 거죠. 의사회 김선웅 특임이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김선웅 특임이사.

안타까운 점은 국내 의료법으로는 유령수술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1983년 미국 뉴저지에서는 “환자 동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신체를 절개하는 것은 의료행위로 볼 수 없어 사기·상해·살인미수로 판단해야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유령수술에 역시 사기·상해죄에 해당된다는 것이 의사회의 입장이죠.

의사회는 여고생 뇌사사고가 일어난 병원에서의 유령수술피해자가 최대 20만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수술한 환자조차 유령수술피해여부를 판단하기 힘듭니다.

자칫 엄청난 게이트로 번질 수 있는 성형외과 유령수술. 규모를 떠나 부도덕한 의료행위는 영원히 퇴출당해야만 합니다. 단 1명이든 20만명이든 누구도 의사가 쥔 메스 아래에서 눈물 흘려서는 안 되니까요.

문득 오래된 미국 영화 한 편이 생각납니다. 뜬금없이 무슨 영화냐고요? 유령퇴치 전문업체 이야기, ‘고스트 버스터즈(Ghost Busters)’요!

기자판 http://post.naver.com/minu8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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