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간이 망가지면 정상적으로 단백질합성과 대사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돼 황달이 생기면서 사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간수치가 정상이고 황달도 없이 잘 지내던 간질환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위장관출혈이다.
“평소 간이 나쁘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으세요?” 피를 토하며 응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에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다. 위출혈로 내원했는데 평소 간이 나빴는지 물어보는 필자를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보는 환자나 보호자도 많다.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위·식도정맥류에 의한 출혈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위·식도정맥류출혈은 간경변환자의 주요사망원인이다. 간이 나빠져 딱딱하게 굳으면 혈액이 간에 들어가기 힘들어진다. 간으로 못 들어간 혈액이 위와 식도로 역류하면서 정맥이 혹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이를 위·식도정맥류라고 한다. 간경변이 심할수록 위·식도정맥으로 유입되는 혈액량이 많아져 정맥류가 점점 커지다가 결국 터지면서 대량출혈이 발생해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간은 하루아침에 딱딱해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적으로 상처를 입으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다만 죽을 힘을 다해 자기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체 간의 60~70%가 망가졌어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대다수 정맥류출혈환자들은 평소 아무런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잘 지냈는데 왜 갑자기 피를 토했는지 의아해한다. 겉과 속이 달랐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왕의 괴벽을 고치기 위해 한 신하가 했던 얘기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양의 머리를 문에 걸어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이다. 오래 전 중국에서 양고기와 개고기 중 어느 것이 귀했는지는 모르지만 겉과 속이 다르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말과 행동뿐만이 아니다. 신체도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질병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해야한다.
위·식도정맥류가 생겨도 출혈이 없으면 증상도 없다. 심지어 출혈이 생겨도 경미하거나 자연적으로 멈춘 경우 환자 대다수가 자각증상을 못 느낀다. 하지만 정맥류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출혈이 오기 전의 폭풍전야라고 할 수 있다.
위장관출혈이 있으면 적혈구에 포함된 헤모글로빈이 위산과 반응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이 때 자장면처럼 검은 흑혈변을 보기 때문에 정맥류가 확인된 환자는 매일 자신의 대변색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위·식도정맥류는 혈액검사와 복부초음파검사로는 알 수 없고 위내시경검사를 해야만 한다. 위내시경검사는 식도와 위점막을 직접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맥류가 얼마나 심한지, 출혈이 있는지, 여기에 재출혈가능성이 높은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검사법이자 정맥류출혈 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기도 하다.
정맥류출혈이 생기면 기본적인 응급조치로 혈압유지, 수혈, 혈관수축제를 투여하고 응급내시경검사를 통해 출혈부위에 정맥류결찰요법이나 경화요법을 시행한다. 정맥류결찰요법은 주로 식도정맥류출혈에 사용되며 내시경을 통해 출혈부위의 식도정맥을 고무밴드로 묶어 지혈한다. 위정맥류는 고무밴드로 묶기 어려워 경화요법이 선호된다. 위내시경을 통해 위정맥류에 직접 경화제를 주입해 출혈을 멈추게 한다. 만일 내시경지혈법이 실패하면 영상의학적으로 간내문맥전신단락술(TIPS)을 시행할 수 있지만 많은 부작용과 위험성이 따른다.
간질환자들은 정기적으로 위내시경검사를 받아 위와 식도에 정맥류가 생기는 지 확인해야 한다. 다행히 베타차단제 복용과 예방적 정맥류결찰술로 출혈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는 있지만 정맥류출혈이 발생하면 간이식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