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사태로 본 환자의 권리와 의무
메르스사태로 본 환자의 권리와 의무
  • 안상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소화기내과 교수 (AHNSH@yuhs.ac.kr)
  • 승인 2015.06.2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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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메르스에 걸렸다면 다 퍼뜨리고 다니겠다.”

지난 12일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A씨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ERS)가 의심돼 객담을 채취하고 선별진료소로 격리되자 소란을 피우며 격리실 걸쇠를 부순 뒤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이 과정에서 아무도 A씨를 제지하지 못했고 결국 A씨는 141번째 메르스 양성판정을 받아 서울의료원 격리병동으로 이송됐다. 이 환자는 3박4일의 제주도여행 사실도 알리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격리 당하게 했다.
 

슈퍼전파자인 14번 환자도 평택성모병원을 경유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건국대병원 전파자인 76번 환자도 삼성서울병원에 간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여행취소권고에도 중국 출장을 간 뒤 현지에서 격리되는 망신을 당했고 서울강남의 60대 여성은 자가격리조치를 무시하고 지방으로 내려가 골프를 쳤다. 이 밖에도 자가격리조치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돌아다닌 격리이탈자 신고만 2000건이 넘는다.

메르스는 2003년 아시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SARS)이나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처럼 공기로 전파되지 않는다. 더운 여름날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돌아다닐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은 불특정다수에게 메르스를 전염시킬 수 있는 자가격리대상자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메르스가 병원내 감염이고 지역사회로 전파되지 않는다고 안심시키지만 자가격리자의 위험천만한 돌출행동을 막지 못하는 정부를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가로부터 안전과 생명에 대한 위협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메르스 같은 국가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 개개인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도 있다.

국내 의료법시행규칙은 2012년부터 모든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권리와 의무를 설명하는 환자권리장전을 게시하도록 하고 있다. 환자는 자신의 건강보호를 위해 적절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질병상태나 치료방법 등의 설명을 듣고 동의하는 자기결정권을 갖는다. 또 진료에 관련된 비밀을 보장받고 부당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

반면 환자의 의무도 있어 자신의 건강관련 정보를 의료인에게 정확히 알리고 의료인의 치료계획에 대해 신뢰하고 존중해야 한다. 타인의 명의를 도용하는 등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진료를 받아도 안 된다.

이번 메르스사태를 보면 환자권리장전에 있는 환자의 권리는 무시되고 의무는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의 알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며 일부 지자체에서는 환자의 개인정보를 공개했다. 감염병에 대한 신속한 정보제공이 감염의 전파를 막을 수 있겠지만 환자 개개인의 인권은 무너졌다. 주위의 시선이나 격리에 대한 공포로 의료진에 거짓 정보를 제공하거나 진료거부를 하며 일상에서 타인과 접촉했던 환자는 환자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메르스는 국가적 신종감염병이다. 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된 오늘날 언제든지 새로운 전염병이 국내에 상륙할 수 있다. 이제 보건복지부는 안정된 보건 없이는 복지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신종감염병에 대한 방역체계를 근본적이고도 종합적으로 점검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염병사태에서 국가, 병원,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강력히 통제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의 국민으로서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한다. 국가재난 전염병사태 속에서는 자신만의 행복추구가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환자와 가족뿐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격리와 치료에 협조하는 의무를 다하며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권리는 의무를 다할 때 비로소 제대로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자.

<안상훈|연세대 세브란스병원소화기내과 교수 AHNSH@yu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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