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환 자가검진으로 조기진단이 가능한가?
간질환 자가검진으로 조기진단이 가능한가?
  • 안상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소화기내과 교수 (AHNSH@yuhs.ac)
  • 승인 2015.05.20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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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은 어지간히 나빠지기 전에는 이렇다 할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는 믿음직스러운 장기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간의 침묵을 고마워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간의 침묵이 곧 간의 건강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침묵의 장기’라고 하는 간의 이상징후를 미리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인터넷검색을 하다 보면 간의 이상징후들을 소개하면서 간질환 유무를 직접 확인해 보라고 권유하는 글을 쉽게 접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가검진항목 대부분이 병이 진행돼 간경화가 생겼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간경화가 진행되면 체내 성호르몬 균형이 깨져 남성은 성기능이 떨어지고 유두가 커질 수 있으며 여성에서는 털이 많아질 수 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여드름이 나기도 한다. 비장이 커져 혈소판이 감소되면 상처가 나더라도 피가 빨리 굳지 않는다. 잇몸출혈이나 코피가 자주 난다. 목이나 가슴, 배에 붉은 혈관이 거미줄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리가 붓고 배가 불러 오거나 눈이 노랗게 된다면 복수나 황달이 생긴 것으로 이미 간경화가 상당히 진행됐음을 의미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 전 병을 초기에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은 병력을 통한 자가진단이다. 가족 중 간질환자가 있거나 간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있다면 B형간염이나 유전적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또 수혈을 받았거나 무허가시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 C형간염 감염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과도한 음주는 말할 것도 없고 당뇨, 비만, 고혈압 같은 대사성질환이 있다면 지방간염일 가능성이 높다. 이 모든 간질환들은 관리를 소홀히 하면 간경화, 간암으로 진행할 수 있어 주의를 요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증상이 간질환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숨이 차면 어느 과 전문의를 찾아야 할까? 어깨가 아프거나 피부가 가렵다면?

평소 계단을 오르거나 힘든 일을 하면 숨이 찼던 중년남성 한 분이 심장내과와 호흡기내과를 찾았다. 그는 심장이나 폐에는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최근 피를 토하며 응급실로 내원했다. 간경화로 인한 빈혈이 원인이었지만 다른 검사들만 많이 받고 간질환 진단이 늦어졌던 경우다. 오른쪽 어깨가 아프면 정형외과를 찾지만 담낭이나 간질환이 원인인 경우도 있고 간질환으로 담즙배설이 잘 안되면 가려움증이 생기거나 소화가 안된다.

반대로 매일 술을 마셔 간검사만 하던 분이 간질환보다는 알코올성심근병증으로 갑자기 사망하기도 하고 콩팥이나 폐가 나빠지기도 한다. 간경화에 의한 혈소판감소로 생각하고 10년 이상 병원을 다니며 고생했던 여성이 뒤늦게 특발성혈소판감소증 같은 혈액질환이 원인이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신체의 장기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간 건강에 대한 관심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가진단을 통해 자신의 증상을 확인해 보고 의심되는 경우 병원에서 검사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증상들은 대부분 간질환이 간경화로 진행됐을 때 나타나는 것들이라 조기진단이 어렵다. 오히려 자가검진항목에 해당되는 내용이 없다고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생길까 걱정되기도 한다.

간질환자가검진은 간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다는 것이지, 조기진단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지는 않는다. 생명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간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은 증상이 나타났을 때 호들갑스럽게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평상 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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