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훈 원장의 사례로 본 재택의료] 수유동 폐섬유증환자 이야기
[노동훈 원장의 사례로 본 재택의료] 수유동 폐섬유증환자 이야기
  • 노동훈 대한요양병원협회 홍보위원장(편한자리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4.03.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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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인구고령화로 노인돌봄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다양한 의료서비스 형태가 모색되고 있습니다. 특히 병원에 오지 못하는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는 재택의료(방문진료)는 현재 시범사업을 통해 허용되고 있지만 참여율이 저조한 데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미약한 상황입니다. 이에 헬스경향은 재택의료에 대한 의료현장과 국민의 이해를 돕고 그 필요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노동훈 원장의 사례로 본 재택의료’ 칼럼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노동훈 원장은 현재 방문진료 시범사업에 참여하면서 초고령사회에 필요한 우리나라 돌봄의료모델에 대한 제언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격주 금요일마다 그가 들려주는 재택의료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노동훈 대한요양병원협회 홍보위원장(편한자리의원 원장)

수유에서 방문요청 건이 왔다. 강북은 길이 좁고 교통체증이 심해 의정부에서 출발해 들어가고 나오는 데만 2시간이 걸린다. 방문진료 스케줄을 잡는 황명환 대리에게 방문시간 변경을 요청하니 몇 차례 시간 조정이 된 환자라고 한다. 머리를 쥐어짜도 연천에서 수유까지 스케줄을 맞출 수 없다. 보호자에게 늦은 저녁이라도 방문이 가능한지 물었다. 수요일이라 교회에 다녀온 후 저녁 9시 40분에 귀가하니 그때라도 오면 좋겠다고 한다. 늦은 시간이니 교통체증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약속을 잡았다.

사전에 파악한 바로는 장기요양 방문조사원이 등급 신청을 하면 무조건 나올 정도로 남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폐에 물에 차서(폐부종) 수차례 시술을 받았다. 보호자 말로는 폐섬유증이라고 하는데 최근 호흡곤란이 심해져 대화도 어렵다고 한다. 거동이 불가능해 누워만 있다. 아내는 남편을 부축하고 화장실에 가다 허리를 다쳐 정형외과 진료를 받았다. 집에서 20분 떨어진 곳에서 장사를 하는데 틈틈이 귀가해 점심과 저녁식사를 챙기고 다시 가게로 간다고 한다.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밤 10시에 도착했다. 환자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가볍게 실눈은 뜨는데 말씀을 못 하신다. 아내는 최근 말도 잘 못 할 정도로 악화됐다고 한다. 폐섬유화가 많이 진행된 것 같다. 어쩌면 곤히 잠드신 것이 아닐까 조심했다. 아내에게는 남편을 깨우지 않겠다고 했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심하던 2019년 2월 28일 폐암과 폐섬유증을 동시에 앓았던 아버지는 천국으로 가셨다. 대구·경북은 황사, 미세먼지가 거의 없던 지역이었지만 2019년은 대구에도 미세먼지가 심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와 여동생은 공기 좋은 곳을 찾아 휴양 계획을 세웠다. 후보지역 몇 곳을 골라 답사를 가고 현지 부동산에 들러 임대료를 협상했다. 그런데 야속한 미세먼지는 아버지를 천국으로 모시고 갔다. 평소 불효를 많이 했던지라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었다. 왜 그리 눈물은 많이 나오던지.

폐섬유증(pulmonary fibrosis)은 폐 조직이 손상되고 상처를 입어 변성, 경화돼 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질환이다. 호흡곤란, 마른기침, 피로, 설명되지 않는 체중감소, 근육·관절통이 나타난다.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거나 며칠 또는 몇 주 내 빠르게 악화되기도 한다. 폐섬유증 진단 후 여명기간은 3~5년 정도이며 완치할 치료제는 없다. 아버지는 폐암이 동시에 있어 예후가 나쁜 편에 속했다. 서울 삼성병원의 호흡기내과 교수님은 희망을 갖고 치료해보자며 아버지를 격려했다. 황사, 미세먼지가 미울 뿐이다.

이번 환자도 필자의 부모님과 유사점이 있다. 빌라 꼭대기층에 두 부부가 살고 20분 정도 거리에서 가게를 하신다. 부모님도 빌라 꼭대기에 두 분이 거주했고 아버지는 지업사(도배, 벽지, 장판 등)를 하셨다.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최근 호흡곤란이 심해져 말씀도 제대로 못 한다는 말을 들으니 곧 임종하시지 않을까 염려됐다. 남은 기간이라도 부부가 편히 지내실 수 있도록 장기요양 의사소견서를 정성껏 작성했다.

장기요양공단 양주 지사의 공무원들도 등급을 신청하고 결과가 나오기 전에 환자가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고 했고 그럴 때마다 자신들도 허탈하다고 했다. 이 환자가 그런 사례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남겨진 시간에 고통이 적도록, 남편을 돌보는 아내에게 부담을 덜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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